이슈 / / 2024. 12. 1. 14:00

시카고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와 에디 변호사 [정의란 무엇인가](Chicago Outf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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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카카오톡 지인이 보내준 내용이 참 감동적이라 블로그에 포스팅합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정의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이들 부자(父子)의 삶

 

알카포네 변호사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시카고의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

(Alphonse Gabriel Al Capone  1899~1947)  그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시카고를 주 무대로 밀주 매매,
매춘 그리고 살인을 일삼는 갱단인 시카고 아웃 핏 (Chicago Outfit)의 두목이 된 후
미국 서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대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밤의 대통령'이란 별명까지 얻게 된다. 



1927년엔 '한 해 총수입이 1억 달러인 세계 최고의 시민'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한 거부가 되었다.

 또한 그 시절 알 카포네는 아인슈타인, 헨리 포드와 함께 시카고의 젊은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 알 카포네는 이지 에디 (Easy Eddie)란 애칭으로 불리던 아이랜드 출신의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었다.

에디 변호사는 해박한 법률 지식으로 악랄한 범죄자인 알 카포네를 변호해 그가 감옥에 가는 걸 막아주곤 했다.

알 카포네는 그 의리에 보답하고자 에디 변호사에게 큰돈을 지불했다. 
직접적인 수고비뿐만 아니라 사업 배당금 조로 하인까지 딸린 성채 같은 맨션에서 식구 전체가 호의호식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저택은 시카고의 거리 한 블록을 몽땅 차지할 정도로 컸다. 
그런 에디 변호사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이 평생 모든 면에서 최고를
누리며 살게 할 수 있는 경제적 부를 쌓아놓은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에디 변호사는 양심의 가책과 함께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자기처럼 돈의 노예가 되어 악독한 범죄에 연루된 더러운 삶을 살지 않고, 
깨끗한 양심으로 행복한 삶을 살도록 일깨워 줘야 할, 아버지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이
강하게 생긴 것이다.

깨끗하고 빛나는 가문의 이름과 모범이 되는 좋은 아버지의 모습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얼마 후, 에디 변호사는 고심 끝에 아주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당국에 알 카포네의 흉악한 범죄 사실을 모조리 고발하고, 여태까지 저지른 자신의 잘못을
자백함으로써 더러운 이름을 깨끗하게 씻어버려야 하겠다는 결단이었다.


마피아 두목을 고발할 경우 치러야 할 대가가 어떤 것인지 잘 알면서도,

결국 에디 변호사는 오로지 자신의 죄과를 회개함으로써 이름을 깨끗하게 하고, 아들에게 정의감을 알려주기
위해, 사법 당국을 찾아가 알 카포네의 끔찍한 범죄 사실을 낱낱이 폭로했다.



에디 변호사의 증언과 증거 자료 덕분에 사법 당국은 오랜 기간 잡지 못했던 범죄 조직의
두목을 탈세 혐의로 구속할 수 있었다.


시카고는 드디어 알 카포네 일당의 악행에서 벗어나 안전을 되찾게 되었다. 

하지만 그 해가 끝나기 전에, 에디 변호사는 시 외곽의 한 외딴 거리에서 온몸에 총알 세례
를 받고 삶을 마감했다.

그는 인생의 가장 큰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아들에게 위대한 ‘정의’
의 선물을 남길 수 있었다.


당시 사건 현장에서 경찰은 몇 가지 물건을 발견한다. 에디 변호사의 주머니 속에는 묵주와
십자가 등과 함께 잡지에서 오려낸 어떤 시 구절이 있었다.

"인생의 시계는 한 번 밖에 감을 수 없다.
아무에게도 이 시계를 언제 멈추라고 할 능력은 없다.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소유한 유일한 시간이다. 

살고 사랑하고 힘써 일하라. 인생은 어느덧 끝나 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믿음은 갈 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이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을 기습해 태평양 전쟁이 시작됐다. 
부치 오헤어(Butch O’Hare) 중위는 태평양 전쟁 당시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서,
남태평양의 렉싱턴 항공모함에 배치되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속한 비행 중대가 임무수행 명령을 받았다. 
전투기의 이륙 직후, 오헤어 중위는 연료 계기판을 보고 정비사가 연료 탱크를 꽉 채우지
않은 것을 알았다. 임무를 마치고 모함으로 돌아올 연료가 충분하지 않아, 오헤어는 이를
편대장에게 보고했고, 오헤어는 항공모함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혼자 모함으로 돌아가고 있던 중 오헤어는 뭔가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적국인 일본의 대규모 비행편대가 모함을 공격하러 저고도로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군 전투기들은 모조리 출격해 남아있는 게 없으니 모함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소속 편대에 연락해 돌아가 함대를 구하도록 할 시간도 없었다. 
심지어 모함 함대에 위험이 닥치고 있다는 경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다.


오헤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어떻게든 모함함대로 향하는 일본 비행편대의 기수를 돌리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주저할 틈도 없이 일본 비행편대를 향해 하강해, 날개에 탑재한 50인치 기관포를
내뿜었다. 기습에 놀란 적기를 한 대씩 차례로 공격했다. 

적의 무너진 진형 사이를 누비며 탄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될 수 있는 한 많은 적기에 총탄을 퍼부었다.

오헤어는 필사적으로 일본 비행편대가 미군 함대에 이르지 못하도록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 

마침내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일본 비행편대는 기수를 돌렸다. 


오헤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누더기가 된 그의 전투기와 함께 항공모함으로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상황을 자세히 보고했다.


오헤어가 탄 비행기에 탑재된 카메라의 필름이 사건의 전모를 구체적으로 밝혀주었다. 

오헤어 중위 혼자 모함과 거기에 승선해 있던 장병 2,800명을 구해낸 것이다. 


적기 9대를 혼자서 물리치고 항모에 착함한 오헤어의 와일드 캣 주위로 온 장병들이 
몰려들어 환호했다. 오헤어가 몰았던 F-15호기는 좌측 날개에 총알구멍 하나만 있을 뿐
기체가 멀쩡했던 것이다. 



오헤어는 이 공로로 전쟁 영웅으로 인정받아 최고 무공훈장인 의회명예훈장
(Congressional medal of honor) 등 여러 개의 훈장을 받고, 중위에서 단숨에 2계급
특진, 소령으로 진급했다.



1945년 6월 22일, 영웅 오헤어 소령을 기리기 위해 새로 건조된 구축함

(Gearing-classdestroyer)에 USS 오헤어(USS O'Hare)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덩치가 워낙 커 ‘Butch’ O’Hare‘란 별칭으로 불린 이 조종사의 정식 이름은 ‘에드워드
헨리 오헤어(Edward Henry O’Hare )였다. 


부치 오헤어는 훈장을 받고 1년 뒤, 한 공중 전투에서 분투 끝에 장렬히 산화한다. 


오헤어의 고향인 시카고 시민들은 2차 대전의 가장 위대했던 영웅 중 한 명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1949년 9월 19일에,

 미국 중서부에서 가장 큰 국제공항인 시카고
(Chicago)의 오차드 디포트 공항 (Orchard Depot Airport)을 오헤어 국제공항
(O'Hare International Airport)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알카포네 조직의 변호사였던 '이지 에디'의 정식 이름은 에드워드 조셉 오헤어
(Edward Joseph O'Hare ,1893~1939)였고,

부치 오헤어 소령은 바로 그가 목숨을 걸고 정의감을 일깨워주려 했던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문둥병 환자와 주님



어느 추운 눈 내리는 겨울밤,
불을 끄고 막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었는데 누가 사제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제로 살아가는 내가 찾아온 사람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습니다.
불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습니다.


문 앞에는 험상궂은 나병환자가 추워서 벌벌 떨며 서있었습니다.
나병 환자의 흉측한 얼굴을 보고 섬칫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죄송하지만
몹시 추워 온몸이 꽁꽁 얼어 죽게 생겼네요.
몸 좀 녹이고 가게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문둥병 환자는 애처롭게 간청을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솔직히 안된다고 거절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제의 양심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못해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주고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자리에 앉자 살이 썩는 고름으로 심한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어떻게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니요"
"벌써 며칠째 굶어 배가 등가죽에 붙었습니다.”

나는 식당에서 아침식사로 준비해 둔
빵과 우유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문둥병 환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빵과 우유를 게걸스럽게 다 먹었습니다.


식사 후 몸이 좀 녹았으니
나병환자가 나가주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문둥병 환자는 가기는커녕


기침을 콜록이며 오히려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성도님! 지금 밖에 눈이 많이 내리고 날이 추워
도저히 가기 어려울 것 같네요.


하룻밤만 좀 재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할 수 없지요. 누추하기는 하지만,
그럼 여기 침대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지요.”
마지못해 승낙을 했습니다.

염치가 없는 문둥병 환자에게 울화가
치밀어오는 것을 꾹 참았습니다.


혼자 살고 있어서 침대도 일인용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침대를 문둥병 환자에게 양보를 하고
할 수 없이 맨바닥에 자려고 하였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문둥병 환자는 또다시 엉뚱한 제의를 해 왔습니다.
“성도님, 제가 몸이 얼어 너무 추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네요.


미안하지만 성도님의 체온으로
제 몸을 좀 녹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처구니없는 문둥병환자의 요구에 당장 자리에 일어나 밖으로
내쫓아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며 꾹 참고
그의 요구대로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문둥병환자를 꼭 안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차마 상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일인용 침대라 잠자리도 불편하고 고약한 냄새까지 나는 문둥병 환자와
몸을 밀착시켜 자기 체온으로 녹여주며 잠을 청했습니다.


도저히 잠을 못 이룰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꿈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꿈속에서 주님께서 환히 기쁘게 웃고 계셨습니다.
“프란시스코야! 나는 네가 사랑하는 예수란다.


네가 나를 이렇게 극진히 대접했으니
하늘에 상이 클 것이다.”


“아 주님! 나는 아무것도 주님께 드린 것이 없습니다.”
꿈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자리에 일어났습니다.


벌써 날이 밝고
아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침대에 같이 자고 있어야 할 문둥병환자는
온데간데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름냄새가 배어 있어야 할 침대에는
오히려 향긋한 향기만 남아 있을 뿐 왔다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아! 그분이 주님이셨군요.
주님이 부족한 저를 이렇게 찾아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모든 것을 깨닫고 밤에 문둥병 환자에게 불친절했던
자신의 태도를 회개하며 자신과 같은 비천한 사람을
찾아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이 기도가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프란시스코의 <평화의 기도>입니다.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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