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 / 2022. 5. 11. 17:37

[사자의서] 죽은다음 49일동안 일어 나는일

반응형

뭘 할 거냐면 영혼의 철학이라는 게 있어요.

그게 지금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거고 이게 사자의 서를 발 딛고서 영혼의 철학까지 가는 게 목표고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인간이 비극에 처해진 이유는 두 가지 때문 아닙니까?

육체는 유한하고 그런데 말도 안 되게 무한하고

거대한 영혼을 그려봤어요. 나의 정신이나 마음이나 그건 너무나 거대한데, 현실에서의 육체 아니면 현실적인 사용이라는 것은 굉장히 제한되지 않습니까?

이 두 가지 괴리에서 부터 비극이 탄생한다고 생각이 드는데, 이 두 가지 세계를 다 수용하기에는 벅차요.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그중에서 하나의 세계만을 고집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은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은 지극히 형이상학적 사람이 되는 거죠.

어떤 걸 선택해도 괜찮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조금 더 건강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하거나, 둘 중에 하나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다를 이끌고 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의 주제 어떻게 살 것인가로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지금도 고민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되지

막막하기도 하고, 막연하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막 엄습해 와요.

내가 잘 살고 있는 내가 맞는 길로 가고 있는 건가! 내가 원래 하고자 했던 것이 이런 것인가!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엄습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뭔가 바꿔봐야 되겠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향을 좀 멈추고

좀 더 나아진 방향 좀 더 괜찮은 방향으로 삶의 방향을 틀어봐야 되겠다.

삶을 다시 디자인해 봐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가끔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면 지금처럼 살아왔던 걸 멈추고 더 괜찮고 내가 원하는 다른 방향으로 삶의 방향을 틀 수가 있을까요.

오늘 말씀드릴 팁의 사자의 서는 도움을 줘요.

어떤 도움을 주느냐!

좀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해 줍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세계관 말고 이렇게 세상을 보는 사람들도 있구나를 알게 됨으로써 뭔가 새로운 세계관에 대한 제안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첫 번째 드리고 싶은 질문은 이겁니다.

현대인들이 갖기 쉬운 가장 편한 사고방식 중에 하나가 죽음이 아무것도 없다라는 사고 방식인 거죠.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죽었을 때 썩어가는 모습이 보일 뿐이지 더 이상 뭔가가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칼 구스타프 융이 티벳 "사자의서" 의 번역본에 설문을 달아주는데 이렇게 얘기한 게 있어요.

그래서 읽어본 다음에 가보도록 하겠습니다다 이 책 에서는 그것에 대해서 어떤 해설을 쓰더라도 닫힌 책으로 시작해 닫힌 책으로 남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만

영적인 이해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열리는 책이기 때문이다.

티벳 "사자의서" 는 진짜 그런 책인 것 같아요. 하드마 삼바바는 티베사자의 서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책은 명상이나 천선수임 같은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붓다와 같은 대자유의 경지를 성취하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을 만난 사람은 결코 불행한 상태로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로 보고 있는 거죠. 융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 책이 대단한 책이야 하지만, 그 책을 현실로 끌어오거나 아니면 현실을 넘어서는 무조건 수단으로 쓰려고 하는 거고 파크마산다가는 이 책의 콘텐츠 자체에 귀를 기울여라. 그것이 너희를 대 자유의 길로 이기게 할 거다라고 보고 있는 겁니다.

내용을 보면 내용이 이제 3가지로 돼 있어요.

49일 동안 일어나는 일 아니겠습니까? 죽은 다음부터 삼일까지 삼사 일 정도 그걸 이제 치카이 바르도 사 일에서 십칠일 정도가 되면 좀 그걸 넘어서서 초인이 바르도라에 가게 되요.

십칠일부터 사십구일까지는 탄생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걸 시베타 바르도라고 합니다.

바르도가 뭐냐면 어제 중간 세상을 얘기합니다.

생과 생 그 중간을 얘기하는 거예요.

죽음만이 바르던가 근데 또 어떻게 보면 죽음과 죽음 사이도 중간 아니겠습니까 생이라는 것도 그래서 생도 바르도라고 불러요 그니까 바르도는 존재하는 존재자가 경험하는 전체를 얘기합니다.

특히 티베불교에서는 여섯 개의 상태를 우리가 회전한다고 생각해요.

태어났을 때 우리가 삶을 살 때도 세 개의 바르도를 체험합니다.

첫 번째 정상 상태, 두 번째 꿈의 상태, 그리고 세 번째 우리가 잘 아는 수행자들은 깊은 명상에서 어떤 의식적 차원을 경험한다고 해요.

그래서 생의 바르도가 이 세 가지입니다.

정상 상태 꿈을 꿀 때 그리고 깊은 명상 속에서 죽은 다음에 바르도가 이 세 가지인 겁니다.

죽음의 순간 그리고 존재의 근원을 체험하고 탄생에 이르는 길로 가고 그 세 가지가 죽음의 바르도 다

첫 번째 지카이 바르도 죽음의 순간에 바르도 죽음의 순간에 사고 체계에 대한 얘기 거죠.

임종의 순간 이제 호흡이 가빠지고 천천히 이제 가라앉고 그러면서 우리가 죽음의 경계를 넘어설 겁니다.

죽자마자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 티베사자의 서에서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사람이 죽으면

친구나 스승 아니면은 어떤 영적인 친구들이 그 옆에 와서 사자를 건드리면 안 돼요 건드리지 않고 그 사자 옆에서 이걸 읽어주게 됩니다.

고귀하게 태어난 자여 그대가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순간이 왔다.

이제 그대는 사후세계의 첫 번째 단계에서 그 근원의 빛을 체험하려 하고 있다.

이 순간에 그대는 그대 자신의 참된 나를 알라 그리고 빗속에 머물러 있으라

이 순간 나 역시 그대를 인도하리다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또 읽어줘야 됩니다. 그대의 마음은 본래 텅 빈 것이고 스스로 빛난다 그것은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다.

그들은 그따의 마음 상태에 머물게 되리라 트베사자에서에서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게 바로 이거 니가 뭘 보게 되든

그것은 진짜 있는 것이 아니고 니 마음의 반영이다.

사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고 이 부분으로 계속 얘기를 할 텐데 티베 사자의서 에서는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네가 죽고 나서 체험하는 것, 그게 정말로 외부에 있는 실체가 아니야 니 마음이야라고 얘기하는 게 융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티베사자에서의 우리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3 4일이 금방 끝납니다.

그렇죠 사자가 죽으면 빛을 보게 될 거야 그리고 그 빗속에 투명한 빛속에 머물러 있어 그럼 바로 해탈할 수 있어 라고 얘기해 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안 된대요 보통 사람들은 그 3 4일 동안에 죽자마자 기절에 읽는다고 합니다.

영적인 존재가 그래서 초기에 나오는 빛을 못 보고

이제 시간은 흘러서 두 번째 바르도를 헤매게 합니다.

이 바르도의 이름이 이거거든요. 존재의 근원을 체험하는 사후세계 존재하는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마이크 자켓 신발 인간 의자 그 존재하는 것들이 있고 그 근원이 있다는 거죠.

보통 사람들 그리고 그 엄밀하다는 철학자들도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 못하기 때문에 철학이 망쳐져 왔다고 생각해요.

그게 이제 하이데거라고 하는 서구 철학에서 굉장히 영향력 있는 인물의 얘기인데 존재 자는 뭡니까 존재하는 거예요.

이런 거 이런 거 이런 거 존재 자아들입니다.

하지만 이건 존재는 아니에요. 존재는 뭐냐 존재자들이 존재할 수 있게끔 해주는 열린 자들이다라는 거죠.

옆에 있는 사람들은 그 사자에게 이렇게 읽어줘야 돼요

아 고귀하게 태어난 자요 마음을 집중해서 주의 깊게 들으라 사람의 의식 상태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그대는 이 중에서 세 가지 상태 죽음의 바르도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라고 알려줘야 된다라는 거죠.

그리고 이 세 줄은 티베사자에서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제부터 뭔가를 볼 거야 계속해서 네 앞에 나타날 거야 하지만 거기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거죠.

그건 뭐냐 네 마음의 투영이다.

그건 허깨비다라는 거죠. 그래서 뭘 보느냐 원래 이 부분이 길거든요.

근데 우리한테는 별로 필요 없습니다.

두 줄만 얘기하면 돼요 첫 번째 4에서 10일 동안은 평화의 신들이 나타납니다.

그 평화의 신들이 우리한테 뭔가 빛을 쏘거든요.

강렬한 빛을 쏜대요 그럼 사자는 그 안에 머물러서 해탈해야 됩니다.

그런데 워낙 자신의 어이나 카르마가 많기 때문에 사자들이 힘들어 해요.

그리고 어두운 빛을 막 쫓아가게 되는데 어쨌든 유해를 하게 되는 거죠.

평화의 신들이 갑자기 분노의 신들로 모습을 바꿔서 나타나게 돼요.

그러면 우리는 분노의 신들 역시 우리한테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 머물러야 되는데 사자는 또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막 도망쳐 다니게 돼요.

그래서 모든 해탈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나머지 7일 동안은 분노의 신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파드마 삼바바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와 같이 인도하면 아무리 약한 정신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웬만하면 영원한 자유에 이르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그것들을 부터 가정이다라고 얘기하다.

이제 사자는 어디로 가느냐 마지막 시드파 바르도 탄생의 길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시드파 바르도를 네 단계로 제가 정리했습니다.

첫 번째 사후의 심판을 받는 데가 있어요.

사자는 지금 혼란스러운 상태거든요. 막 이리저리 막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누굴 만나느냐

생뚱맞게도 염라대왕을 만납니다. 이제 용이 인간의 심리학에 대한 깊은 통찰이라고 얘기했던 이유가 사실 여기 있는데 티베사자에서 자체에서 이렇게 얘기해요.

마찬가지라는 거죠. 야마 영라 그렇게 보이는 존재도 실제로 있는 게 아니야 그건 니 마음의 반영이고 니 카르마의 반영이다라는 거죠.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갑자기 6개의 빛이 비춰오기 시작합니다.

어두운 흰색 어두운 초록색 어두운 노란색 어두운 푸른색 어두운 붉은색 회색 여섯 개의 빛이 나한테 빛이 오게 된다는 거죠.

천신들이 상징하는 것 불교에서는 자만을 얘기하는 거죠.

거인들의 아수라게는 질투 인간은 집착 동물은 무지 귀신은 탐욕

아귀는 탐욕 지옥은 증오를 상징한다라고 합니다.

이제 그 색깔을 통해서 점점 자신의 모습이 구체화되어 갑니다.

그리고 탄생의 과정을 밟게 되요. 사자는 만일 믿음이 약하고 진리에 익숙하지 않아 사자가 지금까지 들려준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었다면 사후 세계의 환영이 그를 압도해 그는 자궁 입구를 찾아 방황하게 될 것이다.

악업이 많은 사자는 계속해서 그러한 것에 끌리게 돼요.

근데 티벳 사자의서 가 위대한 이유는 바로 그 순간에도 자궁의 문을 닫는 법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다는 겁니다.

이 감정 아버지에 대한 어떤 매력 어머니에 대한 매력 아버지에 대 증오 어머니에 대한 그 증오 그 감정 상태가 원인이 돼서 사자는 자궁 속으로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는 순간 최고의 환의를 체험하며

그 상태에서 무의식 속으로 기절해버릴 것이다.

정전한 자의 수정이 이루어지고 사자는 그 안에서 기절해버릴다라는 거죠.

그리고 이제 환생하게 됩니다. 나중에 그대는 알 모양으로 또는 태아 상태 속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라 또는 어린 양으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라고 얘기를 했다.

영혼의 철학 얘기를 잠깐 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내용이고 앞으로 적어도 한 10년 20년은 이걸 고민할 것 같아서 융이 그 서문에서 피벳 사자의 서 서문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이 책 피베사자의 서는 그 책 그 첫 문장부터 모든 주어진 것에 주는 자가 바로 우리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티벳사자의서에서 끊임없이 했던 얘기가 뭐였죠.

바르도에서 보는 것들 그것은 진짜가 아니고 니 내면에 있는 거야라고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생의 바르도에서는요 죽음의 바르도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내 마음이라면 살아있을 때의 바르도에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뭡니까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건 뭐죠

이것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니 마음의 반영이다라는 겁니다.

진짜 외부에 있는 게 아니야 이 안에 있는 거야 석스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영혼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사물 생명 마음의 세계의 본질적인 신성한 실제 뭔지 몰라요 종교나 문화마다 여러 가지 얘기하는 거죠.

그런 것이 있음을 인정하는 형이 상학이다.

동시에 인간의 영혼에서

신성한 실제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심리학이다.

우주에서의 근본을 인정하고 내 안에 그 우주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걸 얘기한다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존재의 내재적이면서 초월적인 바탕에 대한 암 이 영원히 철학에 대한 암 궁금증 그것을 인간의 최종 목표로 두는 윤리학이다.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보편적인 개념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 만약에 우리가 유물론적인 세계관을 부여잡고 있으면 야 죽으면 끝이지 그러면 그것도 괜찮습니다.

그게 맞는 걸 수도 있고요 하지만 내 삶을 뭔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여건이 줄어든다는 거죠.

만약에 내가 그냥 죽는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탄생과 죽음을 거쳐 다시 이곳에 온 존재라면 또 무수히 많은 탄생과 죽음을 거쳐가야 되는 존재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그 길고도 긴 무한의 시간 속에 있는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겠다라는 거죠.

극단적인 선택을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티벳 사자의서 영원의 철학을 들으신 다음에 어떤 분들은 하나의 견해 그냥 소설

아니면 종교적인 저작이다라고 보시는 분이 있을 거고, 어떤 분들은 걱정하실 거예요.

지옥에 간다고 너무 믿는 분들이 있죠.

너무 극단적인 선택은 불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자신에 맞게 자신의 다양한 가능성과 함께 이걸 좀 고려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반응형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